2013 / 02 / 12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2013 세계의 시선(6) 소득 불평등에 대한 미국 보수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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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은 2012년 1월부터 '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관해 눈여겨 볼만한 관점이나 주장을 담은 해외 기사, 칼럼, 논문 등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2013 세계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외에 사회 분야까지  확장하여 해외의 좋은 주장과 의견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지난해 치른 두 차례의 선거에서 '경제민주화’가 핵심 의제로 오른 데서 보듯, 우리 사회에서는 ‘불평등’ 또는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미국 사회 또한 1970년대 이후 중산층의 실질소득 정체와 1% 상위소득 집중 등 불평등 문제가 지난 몇 년간 주요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었다. 그런데, 최근 우파 대변지인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소득이 아닌 소비 데이터를 활용하여, 불평등 이슈가 좌파에 의해서 정치적으로 과도하게 제기된 ‘신화’라고 반격을 가하고 있다.  

그들의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다. 가계가 가처분소득에서 필수 소비재에 지출하는 비중이 1950년 53%에서 1970년 44%, 그리고 오늘날 32%로 감소했다. 또한 과거에 비해서 기대수명이 증가했고, 인종 간 기대수명의 차이 또한 감소했다. 즉 불평등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거나, 설령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중산층의 소비능력 또는 삶의 질은 개선되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을 비롯한 미국의 리버럴 경제학자들은 필수재와 불평등의 개념, 데이터 집계 등 방법론적인 오류 등을 통해 반박하면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주 새사연 ‘세계의 시선’에서는 최근 미국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좌우 경제학자들의 불평등에 관한 논쟁을 소개한다. 뉴욕 타임즈 오피니언에(“The Hidden Prosperity of the Poor”, 2013.01.30) 매주 칼럼을 기고하는 객원 칼럼니스트 토머스 에드솔(Thomas Edsall)이 논쟁의 주요 논지들을 잘 소개하고 있다. 또한 그는 다양한 통계 자료를 활용하여 우파 경제학자들의 논리를 알기 쉽게 비판하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옮긴이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우파 경제학들의 요지는 “조선시대에는 먹고 살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여행도 다니고 핸드폰도 사고 살기 좋아졌으니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일만 해라.”

 

  

푸어의 숨겨진 번영
(The Hidden Prosperity of the Poor)

 2013년 1월 31일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
토마스 에드솔(Thomas Edsall)
 

‘푸어(the Poor)의 숨겨진 번영’이라고 하는 최근 우파가 유포하고 있는 개념은 불평등 확대에 관한 논쟁에서 보수적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치적 우파는 소득불평등 확대가 사회구조와 미국경제에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는 좌파들의 주장을 약화시키기 위해 최근 이 개념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12월 6일 캔자스 주 오사와토미(Osawatomie) 고교에서 행한 연설에서 좌파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현재 확대되고 있는 불평등은 미국 사회의 핵심인 다음과 같은 희망(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나라)이 거짓임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우리 애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나도, 열심히만 일하면 중산층에 들 수 있다. 우리 자식 세대는 우리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세계 여러 곳의 이민자들이 우리 국경을 넘어오는 이유가 바로 그런 까닭이다. 

하류층과 중산층의 삶은 생각보다 낫다는 우파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비록 소득이 정체되거나 미미하게 늘어났다 하더라도, 소득에서 필수 소비재에 지출해야 하는 비중이 안정적이거나 감소하고 있으며, 재량적 소비지출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과거보다 그들의 생활 형편이 나아지고 있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었다 하더라도, 소비불평등(상·하위 계층이 재화와 서비스에 지출하는 금액의 격차)은 상대적으로 거의 변함이 없다. 우파 경제학자 마크 페리(Mark Perry)는 타임지에 아래와 같이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소비자 상품, 재화, 서비스는 주로 경쟁시장에서 민간이 생산하고 있다. 국내외 여행, 식음료, 외식, 주거, 의복, 가전, 가구, 생활용품, 카메라, GPS, 컴퓨터, 자동차, 오토바이, 스포츠용품, 핸드폰, 통신, 라식수술, 성형수술, 악기, 보석, 여행가방, 장난감, 책, 정보, 케이블 TV, 인터넷, 세차, 엔진 오일 등. 현재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일반물가수준과 평균소득수준에 비해서 점점 좋아지고 다양해지고 저렴해지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평균 가계는 과거보다 소비재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즉 평균적인 소비자가 시장이 공급하는 상품에 가장 많은 이득을 얻고 만족하고 있다.  

올해 1월23일, 페리(Perry)와 Boudreaux, 두 우파 경제학자들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정체된 중산층이라는 신화”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두 경제학자는 중·저소득 계층의 소득정체라는 “유명한 진보적 수사”는 “완전히 틀렸다”고 주장한다.  

(상무부 산하) 경제 분석국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적 삶에 필요한 기본재(식료품, 자동차, 의복, 가구, 가전제품, 생활용품 등)에 가계가 지출하는 비중이 1950년 53%에서 1970년 44%, 오늘날 32%까지 하락했다.

미국기업연구소 경제정책 연구 책임자인 하셋(Hassett)과 동료 매튜(Mathur)는 월스트리트 저널 칼럼을 통해 민주당 정치인들을 다음과 같이 공격하고 있다.  

소득불평등 확대에 관한 그들의 주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통상적인 좌파의 비판을 떠올리게 한다. 경제성장은 사회의 모든 계층에 돌아가지 않는다. 19세기 중반, 다양한 조류의 사회주의자들은,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착취하면서 점점 부유해지고 노동자들은 점점 가난해진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는, 경제성장의 열매는 초고소득 계층에 집중되고, 중·하위 계층의 생계수준은 정체되고, 부자와 그들 간의 격차는 점점 확대고 있다는 주장을 또 다시 듣고 있다. 우리나라에 대한 그와 같은 묘사는 잘못되었다. 

대신에, 그들은 좌파들이 틀린 질문에 답을 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동통계국 소비지출 조사 데이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세전소득에 따라 가계를 분류하면, 2010년에 하위20%는 총 소비의 8.7%, 중위20%는 17.1%, 상위20%는 38.6%를 차지하고 있다. 부시행정부의 감세와 세계화의 지속적 확대가 일어나기 전인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수치는 거의 변함이 없다. 각각 8.9%, 17.3%, 37.3%를 차지했다.  

소비이론은 다음 몇 가지 이유로 우파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이는 소득불평등 확대를 완화하기 위한 정부개입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또한 기존의 복지 프로그램(임시 현금보조, 의료급여, 식품 보조금 등)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주장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수적 분석은 열띤 반론을 끌어내고 있다. 내 동료인 크루그먼은 두 경제학자의 주장에 대해서, “간단히 말해 완전히 그릇된 결론”이라 비판하고, ‘Dow 36,000'의 저자인 하셋(Hassett)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망가질 명성조차 없다”며 혹평을 가했다. 실제, 다른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우파의 소비이론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2011년 2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소비불평등은 소득불평등을 반영하고 있는가?”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두 명의 경제학자들은 “소비불평등은 1980~2007년 기간 소득불평등을 밀접하게 추적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다른 말로 하면, 계층 간 지출 격차 확대는 소득 격차 확대와 유사하다는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1980~2010년, 미국에서 소득, 소비, 그리고 여가 불평등”이라는 논문에서 세 명의 경제학자들은 “소득불평등 증가는 상당한 정도로 소비불평등 증가를 따르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불평등의 측정에 관한 극단적 이견은 거의 1세기 동안 지속되고 있는 공공정책 논쟁에서 핵심적인 사안이다. Boudreaux는 다음과 같이 열정적으로 보수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우리가 비록 과거 수십 년 동안 소득과 소비 불평등이 확대되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 사실 자체만으로는 중·저소득 계층의 절대적인 경제후생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소비불평등이 실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지적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 부유한 미국인들의 후생과 어떻게 비교하던지 상관없이, 3~40년 전보다 중산층 미국인의 경제적 삶은 더 나아졌다는 사실이다.  

이와는 반대로, MIT 경제학자인 오토(Autor)는 타임지에 다음과 같은 칼럼을 게재했다.

나는 특정 시점의 불평등 자체에 관해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소득불평등이 부유한 가계와 그렇지 못한 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삶의 기회에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것이 미국사회가 선진국 기준으로 경제적으로 유동적인 사회가 아닌, 점점 더 봉건왕조가 되어가고 있다는 우리사회의 실질적인 위험이다. 이미 196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와 198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 간 가계소득과 대학입학 간 간극이 상당히 확대되고 있다. 교육성과가 생애소득의 주요 예측치 이므로, 이는 출생 당시 환경과 생애소득 간 연계가 이전 세대보다 현 세대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토(Autor)는 불평등이 긍정적 인센티브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불평등이 과도하면 파괴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 민간 종교가 있다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지혜와 노동에 기초하여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능력중시 사회라는 신념일 것이다. 가계 자원의 불평등이 더욱 왜곡되면, 하류층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상류층에 올라갈 가능성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 물론, 어떠한 환경에서도 예외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상위 명문 대학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그들 대다수는 상류층 자녀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은 우리를 한데 묶어주는 미국식 이상을, 불평등이 결국에는 가로막을 것이라는 도덕적 스탠스로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 불평등이 적당한 범위 내에 머물러 있으면 좋은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불평등이 공정경쟁을 왜곡하고 상·하위 계층 간 아이들의 기회를 차별하여 기회의 평등을 감소시킨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결코 원치 않는 거래가 될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오바마의 대통령이 재선함으로써 오토(Autor)의 주장이 Boudreaux에 승리했다.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였던 스티글리츠 교수는 불평등 확대가 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1월7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에 실은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불평등 확대는 경제침체의 원인이면서, 세계경제의 구조적 변환의 결과이기도 하다. 대다수 시민을 위해 복무하지 않는 경제, 정치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결국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기존 제도와 양식에 대한 정당성 또한 의문시 될 것이다.  

그러면 ‘푸어의 숨겨진 번영’ 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우파의 주장을 들었다면, 이제 좌파의 주장을 들어보자. 여기 좌파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가 제시하는 차트 세 개가 있다. 다른 선진국과 미국의 빈곤률을 비교하면 예쁘지가 않다. 아동 빈곤율에 포커스를 맞추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그러면 OECD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빈곤을 줄이기 위한 미국정부의 투자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경제정책연구소(EPI)의 수석경제학자이자 1기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 바이든의 경제자문을 역임했던, 베른슈타인(Bernstein)은 소비불평등에 관한 우파의 주장에 정면으로 공격하며 아래와 같은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 냈다. 2010년 노동부 통계국이 작성한 “연구목적”의 보고서를 그가 재가공하여 만들어낸 차트들을 보자. 그는 주요 소비자 비용이 소득증가율을 훨씬 앞서고 있음을 발견해 냈다.


실제, 소득이 줄고 물가가 상승하여, 하위 계층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2012년 9월, 미국 인구조사국이 발간한 소득과 빈곤에 관한 보고서는 좌파의 주장에 한층 신뢰를 더하고 있다. 2011년에 가계소득은 16년 만에 최저치인 50,054달러로 떨어졌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상·하위 계층 간 소득격차의 확대가 과거 40년 그 어느 때 보다 심각해졌다는 점이다.  

분배 충돌은 정치의 본질이며, 궁극적으로는 실제 누가 얼마를 받아야 하는 가에 관한 데이터 논쟁이다. 이는 결국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세제와 지출 정책의 방향과 형태가 결정될 앞으로 몇 년 동안, 치열한 좌우 전투가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다. 오직 공유성장(shared growth)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루한 싸움이다. 오바마는 1기 행정부 때 이 논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지금 재선이 된 다음,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은 방어적이고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2009~10년 반민주당, 반 오바마 정서가 갑자기 두드러진 것처럼, 양당 권력 투쟁의 균형은 매우 유동적이다.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한편, 미국에서 현재 4260만 명이 공식적으로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적 화약고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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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사이트:
http://opinionator.blogs.nytimes.com/2013/01/30/the-hidden-prosperity-of-the-p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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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