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02 / 04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차별과 위기를 극복한 퀘벡의 사회적 경제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누르면 됩니다.

[목 차]

1. 프랑스계의 역사를 간직한 퀘벡

2. 경제위기 앞에 뭉친 샹티에

3.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는 전방위 네트워크

4. 퀘벡의 다양한 협동조합

 

[본 문]

1. 프랑스계의 역사를 간직한 퀘벡

퀘벡은 캐나다 10개주 중 하나로 캐나다 남동부에 위치하며,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면적은 154만㎢로 서울의 2000배가 넘지만, 인구는 790만 명으로 서울보다 적다. 퀘벡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발전한 곳이다. 3000개의 협동조합이 존재하며, 조합원은 880만 명이 넘는다. 조합원 수가 퀘벡의 전체 인구수보다 많은 것은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해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이 창출하는 일자리는 7만8000개에 이르며, 연간 매출은 180억 달러(약 19조 8000억 원), 자산은 1000억 달러(약 110조 원)를 기록하고 있다.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 경제는 퀘벡주 전체 경제의 8~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공식적인 통계는 없고 기관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탈리아의 에밀라로마냐가 르네상스의 인문학적 전통과 파시스트에 저항했던 빨치산의 역사와 같이 독특한 문화적 배경 덕에 사회적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처럼, 퀘벡 역시 사회적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다. 퀘벡은 프랑스 전통을 물려받은 곳이다. 캐나다는 1500년대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1700년대 영국의 식민지로 넘어간 역사를 갖고 있다. 프랑스계와 영국계가 300년 이상 함께 살고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캐나다를 두고 벌인 전쟁에서 최종 승자는 영국이었고, 패자는 프랑스였다. 때문에 영국계가 사회의 주류세력이 된 반면 프랑스계는 많은 차별을 받게 된다. 영어 사용자가 프랑스어 사용자보다 2배 정도 많다. 프랑스계는 박해받는 소수민족이었던 셈이다.


원래 외부의 적이 있으면 내부의 집단정체성은 더 명확해지기 마련이다. 프랑스계가 모여 살던 퀘벡 역시 강한 독립성과 자치성을 갖게 된다. 퀘벡은 프랑스어만을 공식어로 인정하는 캐나다 유일의 주이다. 1980년과 1995년에 캐나다로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국민투표가  진행되었고, 이 중 한 번은 0.3%의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었다. 최근에는 분리 독립에 대한 요구가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지역정당인 퀘벡당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만큼 프랑스계라는 이유로 받은 차별의 역사가 깊은 것이다. 실제로 최근까지도 퀘벡은 캐나다에서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편에 속한다.

 

2. 경제위기 앞에 뭉친 샹티에

퀘벡의 변화는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프랑스계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 개선을 위한 정치, 경제, 문화 개혁이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조용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1974년 프랑스어가 퀘벡의 공식어로 선포되었고, 1977년 퀘벡당이 프랑스 언어법을 선포했다. 프랑스인이 차별받지 않도록 만인의 평등을 보장하는 종교, 교육, 사회복지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변화는 1980년대에 일어났다. 당시 서구 자본주의가 그랬듯이 캐나다도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로 인해 정부 주도 발전 전략도 한계에 부딪혔고 당연히 사회복지 지출도 줄어들었다. 돌이켜 보면 당시 두 갈래의 대응책이 있었다. 하나는 우리도 익히 아는 민영화, 즉 시장에 맡겨서 효율성을 높이는 길과 또 하나는 지역공동체의 사회적 경제를 활용하는 길이었다. 전자의 길은 값비싼 고급 서비스는 만들어냈을지 몰라도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는 축소되는 결과를 낳았다. 후자의 길 끝에는 비용 감축과 동시에 만족도의 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가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퀘벡은 후자의 길을 선택했다....


* 보고서 전문을 보시려면 위의 제목을 누르면 됩니다.

신고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