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8고병수/새사연 이사

 

이번 2012년 12월 7일부터 14일까지 7박 8일 동안 스리랑카를 다녀왔다. 스리랑카는 수단, 소말리아와 같은 아프리카 지역처럼 세계적인 내전 지역이었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전투가 치열했던 지역이었고, 정부군과 싸우는 타밀반군은 용맹하기로 유명해서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였다.

내전은 2009년에 종식되어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타밀 반군의 점령지는 황폐화되어서 복구가 되지 않고 있고, 난민들은 세계 각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스리랑카 영부인이 운영하는 복지재단의 요청으로 긴급 의료지원을 가게 되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그간의 기록을 연재한다.
 


“고병수 선생, 일정을 바꿔서 스리랑카로 가야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봉사단체 단장의 전화였다.

“어, 며칠 후면 필리핀 갈 예정인데요.”
“거기보다 스리랑카 취약지구에서 의료진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와서 급한 대로 팀을 꾸려  가기로 했으니 그 쪽으로 합류하세요.”  

아니, 이게 웬 날벼락인가? 지금 일하고 있는 병원 진료 시간표에서 겨우 날짜 조정을 하고 이미 경비까지 냈는데… 거기에 내심 필리핀의 파란 해변을 머릿속에 그리며 흐뭇해하고 있었는데… 원래 가기로 한 곳은 유명한 관광지 근처여서 일이 끝나면 하루 정도 즐겁게 쉬고 올 생각에 들떠 있었다.


지구 한 바퀴만큼 걸린 스리랑카  

그렇게 우리는 다급히 꾸려진 팀으로 스리랑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직 그곳까지 직행 항공이 없어서 경유를 해야 하는데, 일정을 보니 비행기를 세 번이나 타야했다. 인천에서 출발하여 홍콩, 인도 첸나이를 거쳐 스리랑카의 콜롬보.

인원 점검과 약품 및 의료장비 등을 모두 확인하고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전날 서울에 내린 폭설로 인해 서울과 연결된 모든 비행기들이 지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유지마다 3시간에서 10시간씩 공항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대기하다가 결국 예상보다 하루가 늦어져서 스리랑카 콜롬보에 내렸다.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8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 스리랑카 북부 지역으로 얼마 전까지 반군의 거점지역이었던 킬리노치(Killinochchi)였다.  

인천공항을 떠나 비행기로 28시간, 버스로 8시간을 달려 왔으니 인천 공항을 떠나 꼬박 36시간 걸린 것이다. 요즘은 지구 한 바퀴를 돌아도 하루가 안 걸릴 텐데.

 
군 막사에서의 첫날밤  

한 밤중 절인 배추처럼 피곤에 지쳐서 도착한 곳은 군부대 입구였다. 정문에서는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고, 그곳을 통과하자 어둠 속 여기저기 막사들이 보인다. 조느라고 잘 보지 못했지만 콜롬보를 벗어나 북부 지역으로 오면서 점점 검문이 많아져 매번 멈춰야했다고 한다. 스리랑카 북부 지역은 아직까지도 치안이 불안하고 곳곳에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스리랑카 북부 지역 중요 도로에는 항상 이러한 검문소들이 있어서
모든 차량들이 멈춰서 검문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묵은 부대 내의 숙소 전경

숙소로 안내받은 곳은 장교들이 묵던 막사 중 한 곳으로 몇 개의 방과 부엌, 간단한 야외 식당까지 갖추고 있었다. 서둘러 가지고 온 약품과 의료장비들을 풀어서 정리하고, 방마다 개인 짐을 풀고 나니 밤 10시가 되었다. 우리는 내일부터 있을 진료를 위해 간단히 회의를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긴 이동의 피로를 안고 오랜만에 등을 붙이게 되자 모두들 몇 분 지나지 않아 잠에 빠져버렸다.

 
 

침대에 누우니 숙소 천장에 도마뱀 한 마리가 스윽 나타나서는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어둠 속에서 나무에 매달려 깩깩대는 원숭이들, 기다렸다는 듯이 날카로운 키스를 퍼부어대는 모기떼들. 창밖으로는 짙고도 하얀 별빛이 쏟아질 듯 불안하게 하늘에 흩뿌려져있다. 그 별빛들 사이로 곡선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것은 별똥별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반딧불이였다. 낯설면서도 아름다운 스리랑카에서의 첫날밤이었다.

 


 스리랑카의 현황 Ⅰ (스리랑카의 역사)

전설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인 기원전 6세기경, 인도의 싱할라족 위자야 왕자가 스리랑카로 넘어와서 용맹스러운 사자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실제 역사 기록에도 기원전 540년경에 아리안족의 한 부류인 싱할라족 700여명이 인도에서 지금의 섬으로 넘어와 위자야를 왕으로 세우고 싱할라 왕국을 건설하였다고 하니 비슷해 보인다. 싱할라 왕국은 약 1,500년 동안 왕조를 이어가면서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웠고, 건축을 비롯한 여러 문화를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누라다푸라’ 사원이다.

스리랑카의 국기에 오른 발에 칼을 쥐고 있는 사자의 모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싱할라족의 건국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다. 싱할라 왕국은 또한 땅이나 섬을 뜻하는 랑카(Lanka)로 불렸으나,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Taprobane, 이슬람 무역상들은 아랍어로 ‘보석의 나라’라는 뜻의 세렌디브(Serendib)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는 영어권으로 넘어가서 Serendipity의 어원이 되어 ‘우연하고도 기분 좋은 발견’이라는 뜻이 되기도 하였다.

왕국에서는 랑카, 외국에서는 주로 세렌디브로 불리던 스리랑카는 1505년에서 1658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있으면서 Ceilao라는 이름이 되었고, 1658년에서 1796년까지 네덜란드 식민지였을 때는 Ceylan, 1796년에서 1948년까지 식민 지배를 했던 영국은 Ceylon으로 바꿔 불렀다. 1948년 2월에 독립하였지만, 영연방의 자치국으로 남았고, 1972년 본격적으로 독립국가가 되면서 랑카(Lanka)라는 고대의 이름을 복원하였다. 이때부터 ‘찬란한’ 또는 ‘빛나는’의 뜻을 지니면서 존경의 의미를 나타내는 Sri를 붙여 현재의 스리랑카(Sri Lanka)라는 국명이 되었다.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싱할라족은 원래 토착세력이었던 반면, 내전의 한 축이었던 타밀족은 과거 영국 지배 시절, 차 농사를 위해 인도에서 유입된 농업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의 대부분은 타밀족이었고, 그들은 스리랑카의 북부나 동부 해안을 따라 분포하면서 살게 되었다.

 

* 스리랑카 의료봉사  체험기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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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