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05정태인/새사연 원장

누구나 잘못을 범한다. 때론 치명적인 실수도 한다. 해서 손무제는 패전이 병가지상사라 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운명은 그 잘못을 인정하느냐에 의해 갈린다. 인정한 자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요, 인정하지 않은 자는 또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 또한 그러하다.

작년 초, 전 세계의 침체 속에서 ‘대한민국호’는 서서히 가라앉았고 당연히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가 곤두박질쳤는데도 ‘대세’는 박근혜였다. 이런 초겨울의 회색 분위기를 대역전시킨 것은 안철수 전 후보와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민주당은 조역, 아니 배경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낙승을 예상했던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과 야권은 패배했다.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당명을 바꾸고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참칭하는 동안 민주통합당은 ‘가짜’만을 외쳤다.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는 다르다’는 식으로 과거를 호도했다.

또 다시 수렁에 빠진 희망을 건져 올린 이는 또 한번 안철수 전 후보였다. 그는 전 세계 정치사에 전무했고 후무할 가장 놀라운 제3후보이다.

 그가 ‘정권교체’를 위해 후보 사퇴의 눈물을 뿌렸는데도 민주통합당은 여전히 주역이 아니다. 민주통합당은 아직도 마지못해, 또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지겠지”라는 관성으로 대선을 치르고 있다. 놀랍게도 지난 몇 년간 민주통합당은 한 번도 변화의 주역인 적이 없었다. 시민 스스로 들고 일어났을 때, 또는 그 불만을 대변한 몇몇 사람의 후광으로 간간히 어부지리를 챙겼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미적거릴 시간은 더 이상 없다. 

내 기준으로 볼 때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보다 훨씬 훌륭하다. 개인의 자질도 그렇지만 새 시대를 대변한다는 점에선 극과 극이다. 실로 박근혜 후보가 1979년 청와대를 나온 후 30여년 간 한 일이라곤 선거 때 당내 라이벌을 가차 없이 처단한 것 밖에는 없다. 그것이 그녀의 개혁이요, 아버지의 유산이다. 본디 신뢰란 반복되는 행위와 소통 속에서 쌓이는데, 에스프레소 한잔을 채울까 말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박 후보가 ‘신뢰의 정치인’이라면 그건 오직 민주당이 아메리카노처럼 멀건 존재이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은 의원직을 내 놓겠다든가, 참여정부 출신이라면 승리해도 청와대나 정부에 들어가지 않겠다든가, 다선 정치인이라면 은퇴하겠다든가 등등 독한 승부수를 경쟁적으로 내 놓아야 한다. 그마저 할 수 없다면 프레임이라도 제대로 짜야 한다. 그래야 반반의 승부나마 노릴 수 있다.

참여정부의 시대적 한계와 몇가지 치명적 오류에 대해 이제는 두부 모 자르듯 깨끗하게 인정해야 한다. 한미 FTA와 부동산가격 급등, 비정규직 증가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 진실을 인정해야 민주당이 살 수 있다. 아니 민주당은 죽더라도 국민이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더 이상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 놓아선 안된다. 그래야만 박근혜 후보의 진정한 문제를 공격할 수 있다.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와 경제민주화는 다르지 않다”는 박 후보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의 진면목은 이 한 문장에 다 들어 있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와 4대강은 ‘줄푸세’의 실천이다. ‘줄푸세’야말로 서민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양극화의 주범이다. ‘줄푸세’와 ‘경제민주화’는 각각 시장만능, 재벌만능주의와 서민 주역의 참여경제를 대표하는 이념이다.

이미 오류가 판명났음에도 박 후보가 ‘줄푸세’를 설파하는 것이야말로 ‘이념투쟁’이다. ‘줄푸세’는 현실에서 이미 서민의 지옥으로 증명됐다. 박근혜 후보는 진심으로 자신의 과거 주장이 틀린 적이 없고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줄푸세’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물론 그 잘못을 또 저지를 것이다. 몇 년 후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박근혜 후보가 할 수 있는 말은 두 마디 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는요?” “참 나쁜 경제”라고... 그녀의 진정한 동맹인 재벌과 조중동 역시 아무 말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바로 ‘줄푸세’이기 때문이다. ‘재벌의 대통령’을 뽑을 것인가, 아니면 ‘서민의 대통령’을 뽑을 것인가. 그 답은 ‘줄푸세’에 있다.

* 이 글은 PD저널에 기고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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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