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2고병수/새사연 이사

 

사례 1.
민들레씨는 갓 돌을 넘긴 아기가 며칠 열이 지속되다가 기침이 심해지자 혹시 폐렴이 아닐까 덜컥 겁이 나서 대학병원 소아과 외래로 직접 가서 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폐렴은 아니고 기침만 심하게 하는 정도의 감기라고해서 안심이 됐지만, 동네의원을 거치지 않고 왔으니 진료비가 비싸다고 하는 게 문제였다. 다니던 동네의원에 전화해서 팩스로 진료의뢰서를 보내달라고 했고, 단골의원은 진료를 하지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의뢰서를 대충 써서 보내줘야 했다. 

사례 2.
민들레씨 시아버지는 동네의원에서 가끔 혈압을 쟀는데, 혈압이 높게 나와 자주 다니던 동네의원 의사로부터 적절한 건강관리를 하도록 교육받고, 혈압강하제 복용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아직 약을 복용하기는 싫어서 거부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가슴이 답답해지고 가슴이 뛰는 증상을 느끼자 걱정이 되어 의뢰서를 써달라고 강요하다시피 하여 유명하다는 대학병원 심장내과 교수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게 됐고, 아직 심장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지만 고혈압 때문에 혈압강하제를 처방받고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계속 고혈압 관리를 위해 두 달에 한 번씩 대학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현상은 가끔씩 지속되고 불안한 마음까지 생겨나서 다니는 심장 내과 교수의 권유로 같은 병원 소화기 내과를 가서 위내시경을 하게 되었다. 거기에서도 가벼운 위염 외에는 특별한 소견이 보이지 않아 나중에는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다. 몇 가지 설문과 상담을 받은 후 그 분은 내과적 문제가 아니라 불안증의 일종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고, 간단한 약을 투여 받으면서 다소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하였다.

사례 3.
동네의원 의사 K씨는 얼마 전 직장암이 의심되는 50대 환자를 진료하고, 진료의뢰서를 작성해서 종합병원에 보낸 적이 있다. 그 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였지만, 회신서가 오지 않아 알 도리가 없었다. 침울해 있을 환자에게 물어보는 것도 도리가 아니겠고, 그 환자는 서로 협력이 잘 되는 줄 알았을 것인데, 의사들끼리 아무런 소통도 없이 환자에게 물어보는 것도 겸연쩍은 일이었다.

사례 4.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소화기내과 전문의 J씨는 동네의원에서 의뢰받은 환자를 진료하다가 환자와 마찰을 빚었다. 간 쪽의 문제로 의뢰를 받았는데, 혈액검사를 비롯한 몇 가지 필요한 검사를 하려고 하자, 환자가 동네의원에서 이미 다 받은 것을 왜 또 하려고 하느냐고 따졌기 때문이다. 겨우 설득해 검사를 마쳤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환자를 통해 보내온 의뢰서에는 환자정보 외에 ‘간질환 의심’이라는 내용밖에 없었고, 검사 기록은 일체 없어서  더 이상의 정보를 알지 못했는데, 환자들은 마치 기록들이 공유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협력하지 않는 종합병원과 동네의원

위의 사례들은 동네의원 의사들이나 종합병원 의사들이 흔히 겪는 일들이다. 점점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 포함)과의 협력 관계가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현장에 있는 의사들은 부실한 의료전달체계의 현실 속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불필요한 상황임에도 진료의뢰서를 써 달라 우기는 환자들, 단골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면 효율적인데도 기어코 종합병원부터 가려는 환자들은 그래도 봐줄만 하다. 대학병원의 유명한 교수를 찾아가서 먼저 진료를 받고 난 후, 의뢰서를 팩스로 보내달라는 요구를 할 때는 도대체 진료의뢰서는 왜 써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가끔 있다. 

환자들만 체계를 무시하고 진료를 받는 게 아니라, 동네의원 의사들도 성실히 의뢰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환자 인적사항 외에 의심되는 진단명과 함께 간단한 진찰 상황에 ‘고진선처 바랍니다.’라고 쓰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그곳에서 알아서 하시라는 표시이다. 진료의뢰서를 받은 종합병원의 의사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재차 환자로부터 들어야 하고, 검사 내용도 첨부되지 않아 다시 검사를 하다보면 환자들과 다툼이 생기기도 한다. 의뢰를 받은 종합병원들도 성실히 회신을 해서 원래 다니던 동네의원이 진행상황을 알 수 있게 해야 하고, 웬만한 만성질환들은 그곳에서 해결하도록 돌려보내 줘야 하는데, 그 또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회신율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나와 있지 않은데, 몇 곳의 조사를 통해 짐작해본다면 50~60% 정도 되지 않을까 한다.

 
의료의 혁신은 의료전달체계의 재정립에서부터

‘의료전달체계(Health care delivery system 혹은 Medical delivery system)’란 제한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면서 국민들이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의 의료서비스를 적절한 장소에서 제공하게 하여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려는 노력이라고 정의된다. 여기에는 단순히 환자의뢰체계(Patient referral system)로서만이 아니라 의료자원을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제공할 것인지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제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의를 보면 의료전달체계가 적절히 정착되기 위해서는 의료 인력의 개발과 교육 및 재정 문제까지 포괄하는 넓은 범위의 개념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간혹 의료전달체계를 단순 환자의뢰체계로만 협소하게 의미를 규정함으로써 올바른 정책 목표를 설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시행 과정에서 혼란을 겪거나 난관에 부딪히게 되기도 한다. 

외국에서는 동네의원과 종합병원의 관계, 일차의료전담의와 단과전문의의 역할 분담의 문제가 1920년대부터 연구되다가 현재의 복지국가의 틀이 잡히는 1940년대를 지나면서 정립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예방의학 전문가들에 의해서 제기되었고, 대형병원과 동네의원의 경쟁이 심화되는 시기에 전국민건강보험의 확대 시행과 더불어 1989년에 제도적으로 이루어졌다. 당시에는 동일 지역에서 종합병원을 이용하거나 타지역으로 가려고 할 때는 반드시 진료의뢰서나 타진료권 진료확인서를 지참해야 가능했다. 불편하다는 민원이 많고,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성급한 판단으로 1998년, 10년 만에 정부는 보건복지부 고시(제1998-56호)를 통해 서둘러 제도 완화를 단행했다. 그 이후 한국의 의료전달체계는 지금처럼 지역 구분도 없고, 종합병원 문턱은 약간 높이는 정도로 의료 기관들 간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후 우리나라의 병원, 의원들은 만족하게 되었을까? 우리 국민들은 편해졌고, 행복해졌을까? 

[1989년 시행됐던 진료권역과 의료기관 종별에 따른 진료 절차]


(자료 출처 : ‘한국일차의료의 발전방향 모색 2012’ 자료 그림)

이후에도 계속해서 대형병원들은 아무런 규제 없이 세계 최고의 거대병원(Mega-hospitals)으로 하늘 높이 빌딩을 증축하고 있으며, 서울-경기 지역 중심의 의료기관 집중과 지역 의료기관 재정난, 의료비용 증가, 동네의원 위기들이 만성화되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의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속속 드러나면서도 정부도 손을 못 대고 있다. 2011년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이전부터 해오던 만성질환관리제도를 확대한 일차의료전담의제를 포함해서 ‘의료기관 기능재정립 기본계획’이 큰 관심 속에 준비되었지만, 아무런 재정 마련 없이 이전처럼 생색내기로 진행하려다보니 해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것은 코미디라고 봐야 하나? 정부나 정치인들이 한 나라의 의료 문제에 대해 얼마나 고민이 없는지를 단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예이다.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들은 보건의료 공약들을 내놓고 있지만, 이러한 의료전달체계를 만들어 놓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이전처럼 국민들의 표를 구걸하기 위한 선심성 정책들이 많다. 다만 일부 후보들이 지역 종합병원의 특성화 정책이라든지, 지역에 좋은 공공병원을 확충한다든지 하는 정책들을 내어놓은 것도 아주 일부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고, 진정한 대책이 아니어서 아쉽다. 각 후보 캠프의 보건의료 담당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국민들 눈높이에서 정책을 마련하고, 국민들 입맛에 맞게 만들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 체계적으로 이러한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얘기를 한다. 믿는다.

나라의 보건의료의 성공 여부는 체계(system)에 달려있다. 그래서 ‘보건의료시스템(Health care system)’이라고 하는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지 않으면 보배가 될 수 없듯이 많은 보건의료 공약들도 체계적으로 잘 엮어서 국민들이 더 건강하고, 의료제공자들도 만족하는 좋은 정책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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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