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시대와 상황에 따라 사회진보운동의 노선이나 전략은 다양하게 바뀌어 왔다. 하지만 변치 않은 것도 있다. 땀 흘려 일하는 압도적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열망과 의지를 가지고 하나로 힘을 모을 때 비로소 현실의 운동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하나된 힘을 계급이라 부르기도 하고 인민이나 민중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기도 한다. 다중이라고 불러도 좋다. 엘리트들이 그들을 각성시키거나 지도하거나, 또는 순전히 자연발생적이어도 좋다. 어쨌든 그들이 열망하고 분노하며, 말하고 행동할 때 사회운동은 시작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생산양식이 된 이후로 민중의 중심에는 늘 노동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 농민이 있었다. 특히 후발 자본주의나 제3세계에서의 광범한 농민의 존재와 그들의 삶의 어려움은 일찍이 노동자와 함께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운동의 동력이 되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진보정당들은 언제나 ‘노동자·농민과 서민’을 대변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도시의 자영업자, 즉 ‘중소상인’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노동자 다음으로 많은 ‘땀 흘려 일하는 민중’이 된 것이다. 진보정당들이 노동자·농민과 서민이라고 부르면서 대략 서민 안에 묻어가는 취급을 받고 있지만, 그 처지가 정규직 노동자보다 못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자영업자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고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현실은 무엇을 말할까. 물론 실제론 노동자인데 자영업자로 위장돼 있는 잘못을 바로잡자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노동자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노동3권이나 사회보험 혜택을  자영업자로 취급받으면 받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중소상인들이 우리경제의 무거운 비중을 차지함에도 사회적·법적으로 인정된 권리나 사회운동적 위치 등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생존권 보호 차원에서 약간의 고려를 해 주는 정도가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현실의 사회진보운동은 중소상인들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 현재 사회운동의 가장 중대한 과제는 ‘재벌’이라고 하는 대자본에 맞서 경제민주화와 노동권을 확보해 내는 것임은 명확하다.

그런데 재벌 대자본과 맞서 경제민주화를 위해 가장 집요하고 성실하게 싸우는 민중은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도 있지만, 대형마트 입점을 저지하려는 상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수년째 대자본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럼에도 상인들이 확보한 것은 많지 않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와 의무휴업 확대 등에 대한 법률을 개정하는 작업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새누리당의 반대와 민주통합당의 소극적인 태도로 전망이 불투명하다. 상인들에 대한 실업보험 지원도 거의 없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낮아지고 있지만 아직 부담이다.

골목상권을 지키려는 상인들의 헌신적인 싸움에 대해 국민의 공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자 정부와 대형마트 대표들은 상인들을 제대로 대변하지도 못하는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와 전국상인연합회 등을 내세워 이른바 ‘대형마트의 자발적 출점 자제와 자율휴무’ 협약이라는 것을 맺기도 했다. 사용자가 어용노조를 앞세워 노사타협을 하던 모습과 꼭 닮았다. 그럼에도 이런 행태를 막을 마땅한 방법과 수단이 상인들에게 없다. 노동자들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엄격한 법적 보호아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행사해 자주적인 노조를 만들고 사용자와 단체협상을 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가 노동자와 노조에 부당노동행위를 하면 법적인 제재를 받는다.

그런데 상인들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스스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주적인 조직을 만들 법적 틀도 없다. 대형 유통재벌이나 정부를 상대로 단체협상을 하도록 보장받은 것도 없다. 점포 매출이 시원치 않아 문을 닫아도 실업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터무니없이 높아도, 상가 임대료가 폭등을 해도 특별한 대책이 없다. 노동자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중이 큰 ‘땀 흘려 일하는 민중’인 중소상인들에게 노동3권과 자영을 할 기본권, 대기업의 부당한 상행위를 제재할 대책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는가. 중소상인을 위한 노동3권·자영 기본권·대기업의 부당상행위를 처벌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은 아닌가. 지금이야말로 중소상인 기본권 선언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이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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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